2016년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파터슨(Paterson)은 거대한 사건이나 눈에 띄는 전개 없이도 관객의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영화입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도시 파터슨에서 버스 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시를 쓰는 한 남자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이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빠르게 돌아가는 뉴스, SNS, 그리고 변화 중심의 시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 속에서 파터슨은 정지된 시간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언가를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가?”, “예술은 일상의 연장인가?” 이 글에서는 영화 속 핵심 키워드인 관찰, 사랑, 시간을 중심으로 파터슨을 2024년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봅니다.
관찰 : 버스 창밖으로 본 시(詩)
파터슨의 주인공은 이름도 도시와 같은 ‘파터슨’입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도시를 운전하고, 점심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술집에 들르는 루틴한 삶을 삽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매일 새로운 것을 관찰하고, 그 관찰은 곧 시가 됩니다. 관객은 그의 눈을 통해 일상 속 작은 변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2024년 현재는 시각적 자극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짧은 영상, 요약된 콘텐츠, 빠른 뉴스가 주를 이루며, 우리는 더 이상 '멈춰서 본다'는 행위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런 시대에 파터슨은 다시금 관찰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파터슨은 버스를 운전하며 승객들의 대화를 엿듣고, 창밖 풍경을 관찰하며 마음속에 시를 써 내려갑니다. 그의 시는 기술적이거나 장대한 서사가 아닌,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엔 섬세한 감정과 존재에 대한 인식이 녹아 있습니다.
그는 “시를 쓰지 않을 수도 있다”는 태도로 임하지만, 오히려 그 자유로움이 그의 글을 더욱 진솔하고 감각적으로 만듭니다. 2024년의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결과 중심의 창작이 아닌, 관찰과 사색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표현이야말로 현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수 있습니다.
사랑 : 파터슨과 라우라의 관계
파터슨의 아내 라우라는 예술적 욕망이 가득한 인물입니다. 집안 곳곳을 흑백 무늬로 장식하고, 기타를 배우고, 머핀을 굽고, 새로운 꿈을 꾸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합니다. 반면 파터슨은 조용히 일상을 유지하며 그녀를 지켜보고 응원합니다. 이 상반된 두 사람의 관계는 놀라운 조화를 이룹니다. 라우라의 말처럼, “당신은 무언가 특별한 걸 하고 있진 않지만, 늘 곁에 있어서 좋아요.”
2024년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은 일종의 '프로젝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성장하고, 성과를 내고,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따릅니다. 하지만 파터슨 속의 사랑은 그런 긴장감이 없습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재촉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 기뻐하는 관계는 오히려 더 깊은 감정의 연결을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파터슨이 자신이 아껴 쓰던 시 노트를 강아지에게 찢기고 좌절하는 장면에서 라우라는 아무 비난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괜찮아. 또 쓸 수 있어”라며 파터슨의 감정을 품어줍니다. 이 장면은 조건 없는 신뢰와 따뜻함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우리의 관계에서도 본받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시간 : 평범함 속의 특별함
파터슨은 일주일의 구조를 따라 전개됩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하루가 큰 사건 없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관객은 그 ‘반복 속의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날씨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표정이 변하고, 같은 장면 같지만 그 속에서 삶의 리듬이 세밀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2024년, 현대인들은 끊임없는 변화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더 나은 직장, 더 좋은 인간관계, 새로운 도전 등을 추구하다 보면, 현재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능력을 잃기 쉽습니다. 파터슨은 이런 시대에 “지금 이 순간이 곧 시이고, 예술이며, 삶”이라고 말합니다. 매일의 루틴 속에서 시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는 반복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일본에서 온 낯선 시인이 파터슨에게 새 노트를 건네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잃어버린 시 노트는 되찾을 수 없지만, 새로운 시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늘 새 페이지를 제공하며, 그 속에 어떤 단어를 써 내려갈지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파터슨은 거대한 사건 없이도 관객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영화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랑은 변화가 아닌 ‘머무름’으로도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또한 시를 쓴다는 행위는 예술가만의 특권이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의 철학임을 보여줍니다.
2024년의 우리는 더 빠르고, 더 강렬하고, 더 많기를 원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편에서 조용히 속삭입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해.” 오늘 하루를 지나며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곱씹는 시간, 그 자체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일상에도 ‘파터슨’이 깃들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작은 사색이, 언젠가 큰 위로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