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지금 다시 보는 덩케르크 (생존, 시간, 시점)

by persistjourney 2025. 5. 22.

지금 다시 보는 덩케르크 (생존, 시간, 시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Dunkirk, 2017)》는 전쟁 영화의 전통적 서사를 뒤엎는 실험적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덩케르크 철수 작전(Operation Dynamo)’을 다루면서도, 개인의 영웅서사보다는 ‘생존 자체의 본질’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특히 하늘, 바다, 육지라는 공간과 1시간, 1일, 1주일이라는 시간 구성이 중첩되며, 관객은 각기 다른 시점에서 전쟁의 공포와 절박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작품을 생존, 시간, 시점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해석하고, 놀란 감독이 왜 이토록 절제된 방식으로 전쟁을 재현했는지 살펴봅니다.

생존: 전쟁의 영웅이 아닌, 살아남는 인간들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지만, 총격, 폭파, 고지 점령 같은 클리셰가 없습니다.
대신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병사들의 시선에서 절박한 생존기를 보여줍니다.

주인공 토미를 비롯한 병사들은 어떤 특별한 영웅성이나 군사적 전략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달리고, 기어가고, 구조선을 기다리며, 때로는 서로를 밀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은 ‘살기 위해’ 벌이는 본능적 행위입니다.

놀란은 이처럼 생존의 정당성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영웅 신화를 해체하고 현실의 전쟁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차별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만, 시민들은 그에게 따뜻하게 말합니다.
“넌 살아 돌아왔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시간: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적 실험

《덩케르크》는 하늘(1시간), 바다(1일), 육지(1주일)라는 서로 다른 시간축을 교차 편집하며 전개됩니다.
이 세 개의 서사는 서로 독립된 시공간처럼 시작되지만, 영화 후반에 이르러 모든 사건이 하나의 순간에 집결되며 강렬한 클라이맥스를 형성합니다.

이 시간 구조는 단지 ‘편집의 실험’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시각화한 장치입니다.
공습을 피하며 하루를 보내는 민간인과, 육지에서 탈출할 수 없어 일주일을 버텨야 하는 병사, 그리고 단 1시간 안에 연료가 다하는 전투기 조종사의 시점은 모두 각자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 안에서 같은 전쟁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시간의 상대성을 서사의 구조로 반영한 점은, 영화가 시공간의 혼돈 속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가를 관객에게 실감나게 전달합니다.

시점: 전장을 구성하는 세 개의 눈

놀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하늘, 바다, 육지라는 서로 다른 시점을 교차 편집하며 전쟁의 입체적 공포를 구현합니다.
이는 각각 조종사(톰 하디), 민간 구조선 선장(마크 라이런스), 그리고 무명의 병사들을 통해 진행됩니다.

1. 하늘 (1시간) – 공중전의 박진감과 제한된 연료, 고도에서의 전장을 경험
2. 바다 (1일) – 민간인이 조종하는 작은 배가 군인을 구조하기 위해 덩케르크로 향함
3. 육지 (1주일) – 포위된 병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공습과 포격을 피해 끝없이 탈출을 시도

이 세 가지 시점은 전쟁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전혀 다른 체감 속도와 감정으로 구성하며, 관객이 어느 한 인물에게만 몰입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영화 내내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며, 끝까지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멀티 시점 구성은 감정 과잉 없이도 긴장감을 극대화하며, 마치 우리가 전장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듯한 체험을 제공합니다.

결론: 요약 및 Call to Action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의 새로운 해석입니다.
놀란은 전쟁을 통해 영웅을 만들기보다,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서로를 구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서사적 감정 대신 시간, 시점, 리듬으로 전쟁의 공포를 그려낸 이 영화는, 현실이 어떤 논리도 감정도 없이 몰아치는 순간임을 증명합니다.

결국 《덩케르크》는 말합니다.
“살아남는 것, 그것이 전쟁 속 가장 위대한 선택이다.”
2024년 지금, 우리에게도 살아남는 것 자체가 존엄임을 되새기게 하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