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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보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 차별, 경계)

by persistjourney 2025. 5. 13.

지금 다시 보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 차별, 경계)

2017년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는 독창적인 사랑 이야기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하며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은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 사랑의 본질, 사회적 차별, 존재의 경계에 대한 탐구라는 깊은 주제를 시적으로 풀어냅니다. 음성 없는 여성과 괴생명체 사이의 사랑이라는 설정은 관습적 로맨스의 경계를 허물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연대와 치유를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사랑’, ‘차별’, ‘경계’라는 세 키워드로 이 작품을 깊이 있게 해석해봅니다.

사랑: 말보다 깊은 연결, 본질의 끌림

‘셰이프 오브 워터’의 중심에는 말이 없는 여성 ‘일라이자’와 괴생명체 사이의 언어 없는 사랑이 자리합니다. 이 관계는 기존의 낭만적 사랑과는 매우 다르게 시작되고, 전개되며, 완성됩니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며, 서로의 존재 그 자체를 수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다름을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사랑을 겉모습이나 조건, 사회적 신분에 기반하지 않고, 감각과 감정, 존재적 외로움에 대한 공감으로 풀어냅니다. 일라이자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고, 괴생명체 또한 ‘실험체’로만 취급받는 객체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서로를 만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은 관객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특히 욕조 속 장면, 계란을 나누는 장면, 음악을 틀고 춤추는 장면 등은 감각적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추상적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말이 아닌 존재와 감각을 통한 이해와 수용이며, 이는 “사랑이란 형태(shape)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의 제목과도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차별: 침묵하는 존재들이 마주한 세상의 잔혹함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미국, 냉전과 인종차별, 성차별이 팽배했던 시기입니다. 델 토로 감독은 이 시대를 단지 배경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일라이자는 장애인, 흑인 친구 젤다, 게이 화가 자일스 등과 함께 사회 속 주변인으로 살아가며, 이들이 얼마나 무시되고 억압받는지를 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대로 영화 속 권력자는 백인 남성 스트릭랜드입니다. 그는 군과 국가 권력을 상징하며, 괴생명체를 ‘하등한 존재’로 간주하고, 폭력과 통제로 그것을 길들이려 합니다. 이는 타자에 대한 지배 욕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배제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 이야기’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고통, 침묵당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사랑은 결국 이들 모두를 잇는 유일한 통로이자, 차별에 맞서는 가장 인간적인 저항의 형태로 그려집니다.

경계: 인간과 괴물, 현실과 판타지의 중간지대

‘셰이프 오브 워터’는 끊임없이 경계와 그 허물기에 대해 말합니다. 영화 속 괴생명체는 인간도, 동물도 아니며, ‘괴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동시에 신성한 존재로도 해석됩니다.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일라이자의 행위는 단지 사랑이 아닌, 경계의 무너짐과 새로운 가치의 발견을 의미합니다.

일라이자 역시 인간 사회에서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평범하지 않으며, 소외된 노동자일 뿐입니다. 이 둘은 경계 밖에서만 존재를 허락받은 인물들이며, 그들이 서로를 선택하는 순간은 세상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상징이 됩니다.

또한 영화의 미장센과 색감, 물의 이미지 역시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흐르게 하며,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이는 델 토로 특유의 스타일로, 관객이 ‘진짜와 가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만드는 시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결국 영화는 사랑도, 존재도, 인간성도 고정된 형태가 없다는 것, 즉 ‘모든 것은 흐르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물’이라는 상징이 있으며, 그것이 곧 영화 제목이기도 한 ‘사랑의 형태(The Shape of Water)’가 되는 것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단순한 괴물과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차별은 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감각적으로 던지는 작품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이유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경계 밖에서 사랑과 이해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 속의 사랑, 소외된 존재들의 연결, 그리고 규칙을 무너뜨리는 연대의 힘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다시 이 영화를 감상해보세요.